제 19 장 대실망의 이유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업은 그것이 개혁 사업이거나 종교 운동이거나를 막론하고 뚜렷한 유사성을 보여 준다. 인류를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원칙은 언제나 동일하다. 오늘날의 중요한 운동들은 과거의 운동들과 비교해 볼 수 있으며 지난날 교회가 겪은 경험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위한 교훈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사업을 이루어 가는 과정마다 성령을 통하여 지상에 있는 당신의 종들을 특별히 지도하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들이다. 각 사람은 주어진 일을 완수하기에 충분한 빛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자기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사업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사업을 통해 이루시려는 바가 무엇인지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선지자들도 그들이 받은 계시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점차적으로 공개하셨다.
사도 베드로는 이 구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벧전 1:10~12). 이것은 그리스도의 시대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귀중한 교훈인가! 거룩한 하나님의 종들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 주어진 그 계시들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다. 그들의 태도는 예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안일을 좋아하고 세속을 사랑하는 자들의 무관심에 대한 얼마나 큰 견책인가!
하나님의 종들도 사람들의 견해와 전통과 거짓 교훈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사건들을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구주와 함께 있는 동안에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세계적 제국으로 높여 줄 세상의 왕이라는 세속적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이 고난과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때가 찼고”
그리스도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라는 기별을 전하도록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 기별은 다니엘 9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천사는 69주일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리라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온 세계를 통치할 메시아 왕국이 예루살렘에 건설될 것을 기대하였다.
비록 그 기별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기별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다니엘 9장 25절의 기별을 전했지만 그다음 절에 기록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지리라는 말씀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이 세상 나라의 영광에 몰두되어 있었으므로 그들의 이해력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들이 주께서 다윗의 보좌에 오르실 것을 기대하고 있던 그때에 그분은 죄인으로 체포되어 매 맞고, 조롱받고, 정죄 선고를 받은 뒤 갈보리의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제자들의 마음은 실망과 번민으로 매우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의 글에 예언된 그대로 정확한 때에 오셨다. 세밀한 부분까지 그분에 관한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한 사명을 증거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마음은 의심과 불안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그들은 번민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난과 죽으심에 관하여 미리 말씀하신 바를 기억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참으로 메시아라면 그들이 그처럼 비애와 실망에 빠질 수 있었을까? 그와 같은 의문이 구주께서 돌아가신 후 무덤에 누워 계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제자들의 마음을 몹시 괴롭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나는…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암흑이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미 7:8~9; 시 112:4; 사 42:16).
제자들에 의하여 선포된 기별 곧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기별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때가” 되자 곧 다니엘서 9장의 69주일이 끝나고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가 올 기약이 찼을 때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제자들이 믿고 가르친 것처럼 이 세상 나라가 아니었다. 그 나라는 또한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단 7:27)할 영원한 나라 곧 장차 세워질 불멸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왕국과 영광의 왕국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라고 말하였다. 보좌가 있다는 것은 나라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비유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영광의 보좌는 영광의 나라를 나타낸다(마 25:31~32 참조). 그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비로소 세워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버리시고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을 때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부부에게 허락된 구속의 약속이 확증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은혜의 왕국이 비로소 그때 세워졌다.
제자들이 그들의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건 곧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소망을 영원히 보증해 주는 것이었다. 그 사건은 비록 그들을 비참한 실망 가운데 빠뜨렸으나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었다. 그들에게 비탄과 실망을 가득 안겨 준 그 사건은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 주었다.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사랑을 나타내는 금에는 이기적 야망이라는 값싼 합금이 섞여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죽음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시려는 엄숙한 순간이던 유월절의 다락방에서까지도 그들은 “누가 크냐”(눅 22:24) 하는 다툼의 정신을 나타내었다. 그들의 관심은 보좌와 면류관과 영광에 쏠려 있었다. 교만과 세속적 영광을 위한 갈망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참성격을 나타내고 주님의 죽음을 가리키는 그분의 말씀에 유의하지 못했다. 이러한 잘못을 고침 받기 위해 그들은 시련을 통과해야 하였다. 제자들에게는 부활하신 구주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위탁될 것이었다. 이 사업에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그처럼 쓰라린 경험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부활 후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눅 24:27)하셨다. 그들의 믿음을 단순히 주님의 말씀이 아닌 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 곧 “확실한 예언”(벧전 1:19) 위에 굳게 세우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런 지식을 나누어 주는 첫 단계로써 제자들의 생각을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로 이끄셨다.
절망에서 확신으로
제자들은 이전보다 더욱 완전한 의미에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발견하였다. 불안과 절망은 확신과 밝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시련을 통과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확실하게 성취되었는지를 보게 되었다. 이제 후로는 무엇이 그들의 믿음을 흔들 수 있겠는가? 극심한 슬픔 중에서 그들은 “큰 위로”를 얻었고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히 6:18~19)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욜 2:26).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제자들이 그들의 구주를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승천하시기 전에 그분께서는 그들을 베다니로 데리고 가셔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말씀하시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고 약속하셨다. 오순절 날 허락하신 보혜사가 강림하셨을 때 신자들의 심령은 승천하신 주님의 임재를 깨닫고 감격하였다.
1844년의 기별과 비교되는 제자들의 기별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의 제자들의 경험은 그분의 재림의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비교가 된다. 제자들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전파했던 것처럼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길고 최종적인 예언 기간이 바야흐로 끝나려 한다는 것과 심판의 날이 가까웠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나라가 세워지려 한다는 것을 전파하였다. 제자들이 증거 한 “때”는 그 근거를 다니엘 9장의 70주일 예언에 두고 있다. 그런데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이 전한 기별은 70주일 예언을 포함하고 있는 다니엘 8장 14절의 2,300주야의 끝에 관한 기별이었다. 두 기별은 하나의 큰 예언적 기간에 포함된 각기 다른 부분들의 성취에 근거를 둔 것이다.
초기 교회의 제자들처럼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그들이 전하는 기별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 안에 형성된 오류들 때문에 그들은 예언 가운데 있는 중요한 내용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별을 전하였지만 그 의미를 오해함으로 실망의 쓰라린 고통을 당하였다.
밀러는 다니엘 8장 14절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고 한 말씀을 해석할 때 성소를 이 세상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를 채택하였다. 그래서 성소가 정결하여진다는 말을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불로써 이 세상이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2,300주야의 끝이 재림의 때를 나타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구약 시대의 상징적 의식에서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일은 제사장의 연중 봉사에서 제일 마지막 봉사였다. 그것은 속죄 사업을 완성하는 일이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도말하고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늘의 기록 책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도말하고 제거하는 하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마지막 사역을 예표 하였다. 이 사역에는 조사하는 일 곧 심판하는 일이 포함되는데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권세와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전에 있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사건이 결정된 후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계시록 14장 7절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라”고 한 첫째 천사의 기별은 재림 직전에 있을 이 심판을 말한다.
이 경고를 전한 사람들은 그 기별이 요구되는 바로 그때에 그것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마치 초기 교회의 제자들이 70주일 끝에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오해했던 것처럼 재림 신자들도 2,300주야 끝에 일어날 사건을 오해하였다. 두 경우 모두 당시 세상에 편만했던 일반적인 오류가 진리에 대해 마음을 어둡게 한 것이었다. 두 경우는 다 같이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 한 기별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였으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기별을 오해함으로 실망을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에 대한 기별을 그들 나름대로 전하도록 허용하심으로써 당신의 목적을 이루셨다. 그 기별은 교회를 시험하고 정결하게 하는 데 필요하였다. 그들의 애정이 세상으로 향해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와 하늘을 향해 있는가? 그들은 세속적 야망을 버리고 기쁨으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그들이 당한 실망은 또한 그 경고를 받아들였다고 공언하는 자들의 마음을 시험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한 실망으로 인해 그들의 경험을 경솔하게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버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곳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즉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성경 말씀의 분명한 증언으로 입증된 진리를 저버릴 것인가?
이러한 시험은 성경을 성경 자체의 해석자로 삼는 대신 사람들의 견해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가르쳐 줄 것이었다. 그것은 믿음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자세하게 연구하고, 그들이 가진 믿음의 기초를 더욱 주의 깊이 살펴봄으로 비록 교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지라도 성경에 기초되지 않는 것은 거부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었다.
시련의 시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후에는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 시련이 그들의 잘못으로 생겼을지라도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약 5:11)며,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시 25:10)라는 말씀을 그들은 귀중한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