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제 33 장 죽음 저편

하늘에서 반역을 일으킨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싸움에 지상의 거민들을 가담시키고자 하였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이 모습은 사탄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압제적이요 피조물들의 행복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주장해 온 것을 반박하는 증거가 되었다. 사탄은 인류의 첫 조상을 타락시켜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고 그들을 자기 세력 아래 예속시킴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신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이 위험한 원수에 대한 경고를 주셨다. 그러나 사탄은 그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은밀히 활동하였다. 그는 당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던 뱀을 매개로 하와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만일 하와가 유혹자와 말을 주고받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안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대담하게 유혹자와 이야기를 나눔으로 그의 간계에 빠져 버렸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2~5).

결국 하와는 유혹에 굴복했고 그녀의 영향으로 아담도 죄를 짓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반대되는 뱀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창조주를 불신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자유를 속박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범죄 후에 아담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을까? 그는 사탄의 말대로 더욱 고상한 상태에 들어갔는가? 아담은 하나님이 내리신 판결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죄의 형벌로 그가 본래 취함을 입었던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너희 눈이 밝”아질 것이라고 한 사탄의 말은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에서만 수용될 듯하다. 그들은 악이 무엇임을 알게 되었고 범죄의 쓴 열매를 맛보게 되었다.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에는 생명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힘이 있었다. 아담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였더라면 그는 끊임없이 자유롭게 그 나무에 접근하여 영원히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죄를 범하자 생명나무로 나아갈 길이 끊어졌고 죽음에 굴복하게 되었다. 순종의 조건으로 약속된 불멸을 범죄함으로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불멸을 다시 그들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타락한 인류에게는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과 썩지 아니함을 복음으로써 드러내”(딤후 1:10)셨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불멸을 얻을 수 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요 3:36)한다.

큰 거짓말

큰 기만자는 아담에게 불순종할지라도 생명을 잃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와에게 말한 뱀의 선언은 영혼 불멸에 관한 최초의 설교였다. 사탄의 권위에 기초한 이 주장은 오늘날도 설교단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우리의 첫 조상처럼 인류의 대다수가 그것을 즐겨 받아들이고 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겔 18:20)라는 선언이 범죄한 영혼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만일 사람이 타락한 후에도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죄도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가족 중 누구도 생명과일을 먹을 수 없었다. 따라서 죽지 않을 죄인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인류의 타락 후 사탄은 그의 부하들에게 사람의 선천적 불멸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도록 명했다. 이 오류를 받아들인다면 죄인이 영원히 불행 중에 살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암흑의 왕은 하나님을 복수심이 많은 폭군으로 나타내며, 그분이 불쾌하게 여기는 자들을 지옥의 영원한 불꽃 속에서 고통당하게 하며 그들이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것을 그들의 창조주가 흡족한 마음으로 내려다본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사탄은 자기의 악한 특성을 인류의 창조주시며 은인이신 하나님께로 돌린다. 잔인성은 사탄의 본성이다. 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탄은 인류를 범죄하도록 유혹하고 멸망시키고자 하는 원수다. 죽은 악인들이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사람이 짧은 생애 동안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교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공의에 참으로 모순되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 중 어디에 이런 가르침이 있는가? 구원을 받고 하늘에 들어간 자들이 자비와 동정의 감정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있는 정서마저도 모두 잃어버리고 야만인처럼 잔인하게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겔 33:11).

하나님은 끊임없는 고통을 보고 기뻐하실까? 그분은 지옥 불에 던져진 자들의 고통과 괴로움과 저주의 소리를 듣길 즐겨 하실까? 그 처참한 부르짖음이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의 귀에 음악으로 들릴 수 있을까? 아, 이 얼마나 엄청난 신성 모독인가! 죄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건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일이 될 수 없다.

영원지옥설의 오류

영원지옥설로 말미암아 초래된 악은 사람이 능히 헤아릴 수 없다.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성경의 가르침이 미신으로 어두워지고 공포로 가려졌다. 사탄은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된 색깔로 칠해 버렸다. 자비로우신 창조주께서 공포와 두려움과 심지어 증오의 대상이 되셨다. 설교단의 가르침을 통해 온 세계에 퍼져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무서운 오해는 수백만의 회의론자와 무신론자들을 만들어 냈다.

영원지옥설은 바벨론이 모든 나라에 마시게 하고 있는 “진노의 포도주”의 거짓 교리 중 하나이다(계 14:8; 17:2 참조). 거짓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로마 교회로부터 왔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증거를 버리고 우리 선조들이 가르쳐 왔다는 이유로 거짓 교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바벨론에 선고된 정죄를 받고 바벨론의 가증한 독주를 마시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또 많은 사람이 영원지옥설과는 정반대되는 오류에 빠져 있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을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기에 그분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영원한 지옥불에 던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영혼이 본래 불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죄인이 비록 이기적 쾌락 속에 살며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할지라도 최후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된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자비만 주장하고 그분의 공의는 무시하는 이러한 교리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악인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죄를 범하게 한다.

비성경적인 보편구원설

보편구원설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에덴에서 뱀이 말한 거짓말 곧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은 가장 비열한 죄인 곧 살인자와 도둑과 간음한 자들도 죽은 후에는 영원한 축복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기에 참으로 적절한 주장이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 그 영혼이 바로 하늘에 간다면 살아 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교리 때문에 스스로 생명을 끊는다. 그들은 번민과 실망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가냘픈 생명의 줄을 끊어 버리고 영원한 축복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들을 벌하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무한히 자비로우시므로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믿고 스스로 안심하는 자들은 갈보리의 십자가를 쳐다보아야 한다.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돌아가신 것은 죄의 삯이 사망(롬 6:23)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은 반드시 합당한 벌을 받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죄인이 되셨다. 그분은 죄의 형벌을 받으시고 아버지에게서 외면당하셨다. 마침내 그분의 심장이 터지고 생명은 부서졌다. 이 모든 희생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사람이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처럼 큰 희생으로 마련된 속죄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자는 누구나 자신의 죄를 지닌 채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명시된 조건들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라. 이 약속은 오직 목마른 자들에게만 주어진 약속이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얻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6~7). 여기에는 또한 분명한 조건들이 명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물을 받기 위해 우리는 죄를 이겨야 한다. 바울은 죄인에 대하여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롬 2:5, 6, 9)라고 선언한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엡 5:5)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4~15).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죄를 취급하시는 당신의 방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시 145:20; 37:38)진다. 하나님의 정부의 권세는 반역을 진압할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징벌하시는 그분의 공의는 자비롭고 오래 참고 긍휼이 많은 하나님의 품성과 조화를 이룰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노예적인 굴종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지혜와 공의와 자비를 충분히 깨닫고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은 “원수를 사랑하”(마 5:44)라고 하신 구주의 명령과 일치한다. 하나님은 온 우주와 그분의 심판을 받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악인들에게 정의를 실현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큰 행복을 선사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의 증거들을 보여 주시고 자비로써 그들을 인도하신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그분의 율법을 파괴하며 그분의 자비를 거절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선물을 주신 분을 멸시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완고함에 대해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의 운명이 결정될 때가 이르러 온다. 그때에 하나님이 반역자들을 당신의 편에 억지로 붙잡아 두고 그들이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강요하시겠는가?

하늘에 들어갈 준비가 되지 않음

사탄을 지도자로 삼아 온 자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교만과 거짓과 방탕과 잔인성이 그들의 품성으로 굳어졌다.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세상에서 그들이 멸시하고 증오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겠는가? 거짓말하는 자들에게 진리는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온유는 자부심과 교만과 양립할 수 없다. 순결과 부패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 이타적인 사랑은 이기적인 사람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다. 이기적인 관심에 몰두한 자들에게 하늘이 어떤 기쁨을 줄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진리와 성결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는 자들이 하늘 무리와 함께 찬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들에게는 하늘에 적합한 품성을 이룰 수 있는 은혜의 시기가 여러 해 동안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순결한 마음을 계발하지 않고 하늘의 언어를 배우지 않았으므로 이제는 너무 늦었다.

하나님께 반역한 생애로 인해 그들은 하늘에 부적합하게 되었다. 하늘의 순결과 평화는 그들에게 괴로움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은 태우는 불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거룩한 곳을 피하고자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하여 차라리 멸망받기를 원할 것이다. 악인의 운명은 자신들의 선택의 결과이다. 그들이 하늘에서 제외되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공의롭고 자비로운 것이다. 노아 홍수 당시의 물과 같이 심판 날의 불을 통하여 악인들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다는 하나님의 판결이 선포된다. 악인들은 그들의 의지를 반역에 사용해 왔다. 따라서 생명이 결정될 마지막 때에는 그들의 생각을 불법에서 순종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다.

두 가지 운명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생명은 의인이 받을 상이요 사망은 악인이 받을 몫이다. 성경은 “둘째 사망”과 영원한 생명을 대비시키고 있다(계 20:14 참조).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온 인류에게 이르렀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무덤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구원의 계획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무덤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행 24:15).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그러나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가지 부활이 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고통의 끝

생명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며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계 20:6)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이 없어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죄의 삯”을 받게 된다. 그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형벌을 받고 마침내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죄 있는 상태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가치 없음을 증명한 죄인들을 취하여 가신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10). 그들은 “본래 없던 것같이”(욥 1:16) 된다. 그들은 소망 없는 영원한 사망 가운데 빠진다.

죄와 그 결과로 초래된 불행과 파멸은 모두 종식된다.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나이다”(시 9:5~6). 요한은 계시를 통하여 완전한 화음을 이루는 찬양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영원한 고통 중에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참람된 말을 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지옥에 있는 자들의 고통스런 절규가 구원받은 자들의 노랫소리와 결코 뒤섞이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에게 의식이 있다는 가르침은 영혼불멸이라는 오류에 기초한 것이다. 이 교리는 영원한 지옥설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며 인간의 이성과 감정에도 반대된다.

영혼불멸설에 의하면 구원받아 하늘에 있는 자들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이 산 자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알고 그들이 겪는 생애의 모든 슬픔과 실망과 번민을 본다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이 될 수 있겠는가? 회개하지 않은 자의 영혼은 그 숨이 끊어지자마자 지옥 불로 떨어진다는 교리는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다윗은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 146:4). 솔로몬 역시 똑같은 증언을 하였다.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5, 6, 10).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리이다”(사 38:18~19).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시 6:5).

오순절에 베드로는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행 2:29),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행 2:34)다고 하였다. 다윗이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의인이 죽을 때 승천하는 것이 아님을 증거 한다.

바울은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고전 15:16~18)라고 말하였다. 만일 4천 년 동안 의인이 죽을 때마다 즉시 승천하였을 것 같으면 바울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부활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나가시려 할 때 그분께서는 그들이 장차 당신께로 올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라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그 사실을 더욱 자세하게 알려 준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8). 그는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부언한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의 속박은 깨뜨려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영생으로 부활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고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심판은 사람이 죽을 때 받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한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1). 여기서 사도는 세상의 심판을 위한 특별한 날 곧 미래의 특정한 날이 작정되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유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유 1:14~15).

만일 죽은 자들이 이미 하늘에 들어갔거나 혹은 지옥 불 속에서 부르짖고 있다면 장래의 심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은 애매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은 보통의 두뇌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편견 없는 마음으로 생각할 때 오늘날 보편화되어 있는 영혼불멸설은 과연 정당성이 있는가? 의인들이 오랫동안 이미 하늘에서 하나님 앞에 머물다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는 칭찬을 받는다는 말인가? 악인들도 이미 지옥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저주를 받을 너희여 나를 떠나…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21, 41)라는 선고를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영혼불멸설은 로마 교회가 이교에서 가져온 거짓 교리 중 하나였다. 루터는 그것을 가리켜 “로마 교회의 쓰레기더미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기괴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성경은 죽은 자들이 부활 때까지 잠잔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얻는 불멸

잠과 같은 죽음은 피곤한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복된 휴식이 아닌가! 그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길거나 짧거나 간에 단지 일순간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고 깨어 일어나 영광스러운 불멸을 입을 것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전 15:52~54).

그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그들은 자신들이 멈추었던 그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 낼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감각은 죽음의 손길이었고, 마지막 생각은 그들이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처음으로 갖는 기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승리의 함성이 되어 메아리칠 것이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각 시대의 대쟁투 엘렌 G. 화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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