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제 8 장 진리의 투사

새 황제 카알 5세(Charles V)가 독일의 왕위에 올랐다. 카알이 왕좌에 오르는 데 크게 공헌한 작센의 프리드리히 선제후(選帝侯)는 루터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 전에는 루터를 반대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말도록 카알에게 요청하였다. 황제는 매우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교황의 추종자들은 루터가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것에 대하여 만족해했다. 그러나 선제후는 단호히 주장했다. “루터 박사에게 통행권을 주어 학식 있고 경건하고 공정한 재판관 앞에 가서 재판을 받게 해야 합니다.”

보름스에서 회의가 열렸다. 독일의 영주들이 젊은 황제와 처음으로 의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들과 외국에서 온 사절들이 모두 보름스에 모였다.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개혁자에 관한 사건이었다. 카알은 이미 선제후에게 루터를 데리고 의회에 올 것을 지시하였으며, 그를 보호하고 논의할 문제에 대하여 자유로운 토론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했다. 루터는 선제후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만일 황제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일 그들이 내게 대하여 폭력을 쓰고자 한다면…나는 그 문제를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그분께서 나를 구원하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생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내가 도망하는 일과 믿음을 철회하는 일 이외에는 무엇이든 기대해도 좋습니다. 나는 도망할 수 없으며, 믿음을 철회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루터가 의회에 출두한다는 소식이 보름스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흥분했다. 이번 사건을 특별히 위임받은 교황의 사절 알리안더(Aleander)는 격노하였다. 교황이 이미 정죄 선고를 내린 사건을 다시 심리한다는 것은 교황의 권위를 모욕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는 루터의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많은 영주가 교황에게 반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려하였다. 그는 루터가 보름스에 나타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카알에게 호소했고 결국 황제를 설득하였다.

알리안더는 이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루터를 정죄하고자 하였다. 그는 개혁자를 “선동, 반역, 불경건, 참람” 등의 죄로 고소하였다. 그러나 교황의 사절이 나타낸 격정과 분노는 그가 어떤 정신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사람들은 “그가 증오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 고 여겼다.

알리안더는 황제에게 교황의 칙령을 실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법률로는 제후들의 동의 없이 이 일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 사절의 집요한 요구에 못 이겨 그의 소송 사건을 의회에 제출하라고 명령하였다. 루터에게 호감을 가진 의원들은 알리안더의 변론으로 초래될 일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센의 선제후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그의 고문관 몇 사람이 알리안더의 연설을 기록하였다.

루터가 이단으로 고소당함

알리안더는 자신의 학식과 웅변의 힘을 발휘하여 루터가 교회와 국가의 원수임을 역설했다. 그는 루터의 오류에는 십만 명의 이단자를 화형시킬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루터의 추종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오만한 교사들, 타락한 신부들, 방탕한 수도승들, 무지한 변호사들, 부패한 귀족들이다. …그러나 가톨릭당은 수와 능력과 권력에서 그들보다 얼마나 더 우세한가! 이 중요한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함으로써 무지한 자를 계몽하고, 교만한 자를 경고하고, 동요하는 자를 안정시키고, 약한 자에게는 힘을 주게 될 것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를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새 교리를 전파하는 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무지하고 가난한 소수의 무리가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들은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무지하여 기만당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수효와 영향력에 있어서 얼마나 우세한가! 우리에게는 위대하고 유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편의 세력은 얼마나 막강한가!” 이러한 논조는 개혁자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자리에는 명료하고 감동적인 성경 진리로 교황의 대리자를 반격할 루터도 없었고, 개혁자를 옹호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었다. 루터와 그의 교리를 정죄할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이단자를 근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로마 교회는 자기편을 변호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를 가졌다. 그래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말은 다하였다. 그러나 외관상의 승리는 패배의 신호였다. 왜냐하면 진리와 오류가 공개적으로 부딪히면 두 정신은 분명하게 대조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교황권의 횡포의 결과로 생긴 진상을 폭로하도록 한 사람을 준비하셨다. 작센의 조지 공작(Duke George)이 둘러앉은 귀족들 앞에서 일어나 로마 교회의 기만과 가증한 죄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로마 교회의 악폐에 대한 부르짖음이 도처에서 들립니다. …온갖 수치스러운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돈, 돈, 돈입니다. 진리를 가르쳐야 할 전도자들이 거짓말만 쏟아 놓고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은 용납될 뿐 아니라 오히려 보상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더 많은 거짓을 쏟아 낼수록 더 큰 이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더러운 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샘의 근원이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방탕은 탐욕을 향하여 손을 뻗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사제들의 죄악으로 인해 많은 불쌍한 영혼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전반적인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연사의 말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서 오류의 암흑을 제거하고 진리를 보게 하였다.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은 개혁 사업의 반대자들까지도 지배하였으며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는 대사업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루터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루터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음성이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독일 국민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교황권의 압제의 상황을 조사하도록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악폐의 목록과 함께 부패를 즉시 시정해 달라는 청원서가 황제에게 제출되었다. 탄원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우리 민족의 파멸과 치욕을 막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포괄적인 개혁을 명령해 주시고, 그 일이 성취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탄원하는 바입니다.”

루터가 출두 명령을 받음

이제 의회는 루터가 출두해야 함을 요구했고 마침내 황제도 거기에 동의함으로 루터가 소환되었다. 루터는 소환 명령과 함께 안전한 이동을 보증하는 통행권도 받았다. 통행권은 그를 보름스로 데려오도록 명령을 받은 전령관을 통해 비텐베르크에 전달되었다.

루터가 사람들로부터 편견과 적의를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루터의 친구들은 비록 그가 통행권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시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러자 루터는 대답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내게 보내 주셔서 오류의 사자들을 이기게 하실 것이다. 나는 나의 일생 동안 그들의 불의를 고발하였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 그들에게 승리할 것이다. 그들은 보름스에서 내게 신앙의 철회를 강요하기 위하여 광분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철회할 내용은 바로 이것이 될 것이다. 전에는 내가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말하였지만 이제는 교황이 우리 주님의 대적이요 마귀의 사도라고 주장한다.”

황제의 전령관 외에 진실한 세 친구가 루터와 동행하기로 하였다. 멜란히톤도 그의 마음이 루터의 마음과 결합되어 있었으므로 그와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루터는 허락하지 않았다. 루터는 멜란히톤과 작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원수들이 나를 죽임으로 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그대는 계속해서 진리를 전하고 진리에 굳게 서야 하오. 나를 대신하여 일해 주시오. …그대가 살아 있기만 하면 나의 죽음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닐 것이오.”

백성의 마음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이미 루터의 저서가 보름스에서 정죄당한 것을 알고 있었다. 동행하는 전령관은 루터의 안전을 염려한 나머지 그에게 계속 전진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비록 모든 도시에서 저지를 당한다 할지라도 나는 계속하여 나아가겠다.”고 대답하였다.

에르푸르트에 이르러 루터는 전에 수도승으로서 구걸하며 다녔던 거리를 지나갔다. 그는 자기가 머물던 수도원도 방문했으며 오늘날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 그 빛이 자기에게 처음으로 비치던 때에 번민하던 일을 추억하였다. 거기서 그는 설교 요청을 받았다. 이 일은 그에게 금지된 것이었지만 동행하는 전령관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한때 수도원에서 천한 일에 종사하였던 수도승이 이제 설교단으로 나아갔다.

그는 모인 무리를 향하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을 시작하였다. “철학자들, 박사들, 저술가들이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쳐 주고자 노력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제 여러분에게 그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으로 하여금 죽음을 멸하시고, 죄를 근절시키시고, 지옥의 문을 닫아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며…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업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공로로 구원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도취된 것처럼 설교를 들었다. 생명의 떡이 주린 영혼들에게 나누어졌다. 그는 그들 앞에 교황이나 교황의 사절이나 왕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였다. 루터는 자신의 위급한 상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주목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다. 그는 그리스도 뒤에 숨었고 죄인의 구속자인 그분만을 드러냈다.

순교자의 용기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루터는 도처에서 큰 관심과 환대를 받았다. 열성적인 무리가 그에게 몰려와서 가톨릭 당국의 의도를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후스에게 한 것처럼 당신을 화형시켜 당신의 몸을 재로 만들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루터는 “그들이 보름스로부터 비텐베르크에 이르는 길에 불을 지른다 할지라도…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 불을 뚫고 가서 그들 앞에 서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루터가 보름스로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의 친구들은 그의 안전을 염려하였고, 그의 적들은 루터의 사업이 성공할까 봐 두려워하였다. 교황의 지지자들은 그가 어떤 친절한 기사의 저택에서 머물도록 안내하였고 그곳에서 그에게 제안하기를 그의 태도에 따라 모든 어려움이 우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하였다. 루터의 친구들은 그를 위협하고 있는 위험을 말해 주며 그가 보름스로 가는 것을 만류하였으나 루터는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보름스 시내의 악마가 비록 지붕 위의 기왓장처럼 많을지라도 나는 반드시 들어가리라.”

그가 보름스에 도착하자 많은 군중이 그를 영접하고자 성문으로 모여들었고, 흥분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는 마차에서 내리면서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십니다.”라고 말하였다.

그의 등장은 교황의 추종자들을 긴장시켰다. 황제는 즉시 의원들을 소집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절차를 밟을 것인가? 한 완고한 가톨릭 주교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 문제를 이미 오랫동안 논의해 왔습니다.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 이 사람을 즉시 처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시기스문트 황제께서도 얀 후스를 화형에 처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단자의 통행권에 구애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개혁자에게 회의장에서 발언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온 도성은 이 놀라운 사람을 보기 위해 열광하였고, 그의 숙소는 방문객들로 들끓었다. 루터는 계속된 여행에 지쳐 있어서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그는 귀족들과 기사들과 신부들과 시민들이 열광적으로 계속 모여들었기 때문에 두어 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하였다. 그들 중에는 교회의 폐악을 개혁할 것을 황제에게 담대하게 요구한 귀족들도 많았다. 루터의 친구들은 물론이요 적들도 이 대담하고 굽힐 줄 모르는 수도승을 보기 위하여 왔다. 그의 태도는 확고하고 용감하였다. 그의 창백하고 야윈 얼굴에는 수고와 질병의 흔적이 역력했으나 친절하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솔한 그의 말에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으며 그의 적들도 그 위세에 눌려 저항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거룩한 힘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옛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말한 것처럼 “그가 귀신이 들렸다”(요 10:20)고도 하였다.

이튿날 황실의 한 관리가 그를 의회로 인도하였다. 거리는 로마 교회의 권위에 용감하게 대항하는 주인공을 보기 위해 모인 열광하는 군중으로 차고 넘쳤다. 루터가 재판관 앞에 서려고 할 그때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한 늙은 장군이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였다. “가련한 수도승이여! 가련한 수도승이여! 그대는 지금 나와 다른 장군들이 가장 격렬한 전쟁터에서 치렀던 어떤 전쟁보다 더 치열한 싸움에 직면해 있소. 만일 그대가 하는 일이 정당하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진하시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오.”

루터가 의회에 서게 됨

황제는 보좌에 앉았고, 국가의 고위층들이 그 주위에 둘러섰다. 마르틴 루터는 이제 그의 신앙을 변호해야 하였다. “그 광경 자체가 교황권에 대한 루터의 분명한 승리였다. 이미 교황은 그에게 정죄의 선고를 내렸지만 정죄받은 그 사람이 지금 재판정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의회가 교황권 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교황은 그를 파문하여 모든 인간 교제에서 단절시켜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중하게 소환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회의 영접을 받았다. …이미 로마 교회는 그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으며 로마 교회를 이러한 굴욕에 처하게 한 것은 일개 수도승의 음성이었다.”

비천한 계급 출신의 개혁자는 두려워하고 당황하는 듯이 보였다. 몇몇 영주가 그에게 다가왔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8)라고 속삭였다. 또 다른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니라”(마 10:18~20)라고 말하였다.

침묵이 회의장을 뒤덮었다. 황실의 관리가 일어서서 옆에 쌓아 놓은 루터의 저서들을 가리키면서 루터에게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라고 요구하였다. 그 모든 저서를 자기의 것으로 시인하느냐는 것과 그 저서들에 담긴 주장들을 취소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차례로 저서들의 이름이 열거되자 루터는 그 저서들이 다 자기의 것임을 시인했다. 그러나 둘째 질문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은 믿음과 영혼의 구원에 관한 것이며 하늘과 땅에서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보배인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깊이 생각한 뒤에 신중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진리가 요구하는 바에 어긋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벗어나지 않게 대답할 수 있도록 잠시 유예의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간청합니다.”

루터의 이러한 답변은 그가 일시적인 감정이나 충동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회중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그와 같은 침착성과 자제력은 대담하고 타협을 모르는 그에게서 전혀 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후에 신중하고 지혜롭고 권위 있게 답변할 수 있게 되었고, 원수들은 그의 답변을 듣고 당황하고 놀랐으며 그들의 오만함은 힘을 잃었다.

이튿날 루터는 최후 변론을 해야 했다. 잠시 그는 용기가 꺾인 듯했다. 그의 적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구름이 그를 둘러쌌고, 그를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듯하였다. 그는 고뇌에 찬 심정으로 애끓는 절규를 토하였는데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이해하실 수 있는 외침이었다.

“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여! 만일 이 종이 신뢰할 것이 이 세상의 힘뿐이라면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종의 최후의 시간이 왔습니다. 이미 종은 정죄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세상의 모든 지혜에 대항하고 있는 이 종을 도와주시옵소서. 이 사업은 당신의 사업이며 의롭고 영원한 사업입니다. 오! 주여!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진실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여! 종은 어떤 사람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이 사업을 위하여 저를 택하셨습니다. …제 곁에 계시옵소서.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망대이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가 공포에 눌리게 된 것은 고난과 고문과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힘이 너무도 미약한 것을 느꼈던 것이다.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진리의 사업이 패할까 두려워한 것이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승리를 위하여 그는 하나님과 씨름하였다. 완전한 절망 가운데서 그는 믿음으로 전능하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었다. 그의 마음은 그가 홀로 의회에 출두하지 않는다는 보증으로 굳세어졌다. 마음속에는 다시 평안이 찾아왔다. 그는 고관들과 제후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높일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을 기뻐하였다.

루터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면서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는 투쟁을 위해 준비하였다. 그는 답변을 준비하며 자기 저서들에 있는 구절들을 검토하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을 성경에서 뽑았다. 그 후에 그는 성경 위에 왼손을 얹고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여 들고 “비록 나의 피로써 증거를 확증할지라도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충성하고, 신앙을 거리낌 없이 고백하겠노라.”고 맹세하였다.

다시 의회에 선 루터

두 번째로 의회에 섰을 때 그는 침착하고 평화로웠다. 지상의 위대한 사람들 앞에 선 하나님의 증인은 당당하고 고상한 모습이었다. 황실의 관리는 그에게 자기의 주장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는지 물었다. 루터는 아무런 격정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의 태도는 겸손하고 존경스러웠으며 확신과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회중은 심히 놀랐다.

루터는 말했다. “지극히 존엄하신 폐하여! 고귀하신 제후들과 인자하신 영주들이여! 오늘 저는 어제 저에게 내려진 명령에 따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본인의 무지로 인하여 궁정의 관례나 예법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인은 수도원에 묻혀 있었을 뿐이며 궁정에 나아가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한 다음 그는 자신의 출판물 중 어떤 것은 믿음과 선행에 대한 것이며 이것은 자신의 적들도 유익한 것으로 인정했다고 언급했다. 이런 저서를 취소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진리를 부인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둘째 부류의 것은 로마 교회의 부패와 악폐를 폭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저서를 취소하는 것은 로마 교회의 죄악을 한층 더 조장하고 불경건한 일들을 계속 자행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셋째 부류의 저서에서 루터는 교회의 타락상을 옹호하는 자들을 공격하였다. 이 저서들에는 실제보다 더 과격하게 표현한 것이 있음을 그는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종류의 저서도 취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하면 진리의 원수들이 한층 더 기세를 얻어 하나님의 백성을 더욱 잔인하게 취급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나 자신을 변호하고자 합니다. 만일 내가 악한 말을 하였다면 그것을 증명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존엄하신 황제와 훌륭하신 제후들과 각 계급에 속한 모든 분께 호소하오니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로써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하여 저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 모든 오류를 즉시 취소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진해서 저의 저서들을 불태워 버리겠습니다. …저는 옛날과 마찬가지로 복음이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특성으로 볼 때 필연적인 일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분쟁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핍박하는 것이 되고 피할 수 없는 엄청난 위험과 현세적 불행과 영원한 멸망이라는 무서운 함정에 빠지게 합니다.”

루터는 독일어로 말했다. 그는 다시 라틴어로 같은 말을 반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다시 처음과 같이 열렬하고 분명하게 진술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셨다. 여러 제후의 마음이 이미 오류와 미신으로 어두워져 있었으므로 첫 번째 진술에서는 루터의 논증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진술에서 그들은 루터가 말한 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주어진 빛에 대하여 완고하게 눈을 감았던 자들은 루터의 강력한 말에 격분하였다. 그의 진술이 끝나자 의회의 대변인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너는 주어진 질문에 대하여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분명하고 정확한 답변을 해야 한다. 너는 취소하겠느냐, 취소하지 않겠느냐?”

개혁자는 대답하였다. “존귀하신 황제와 고귀하신 제후들께서 나에게 분명하고 단순하고 정확한 대답을 요구하시므로 이제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나의 신앙을 교황이나 의회에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 많은 잘못을 범하였고 피차간에도 서로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의 증거로 확신하기 전에는 나는 취소할 수 없고 취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양심을 어기고 말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입장을 고수합니다.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 아멘!”

이와 같이 그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한 기초 위에 서 있었다. 그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탁월성을 증거 하였을 때 그의 고상하고 순결한 인품, 그의 마음의 화평과 기쁨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났다.

첫 번째 대답에서 루터는 아주 공손한 태도로 말하였다. 교황의 추종자들은 그가 유예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것을 그의 신앙을 취소할 전조라고 보았다. 카알 황제도 그 수도승의 지친 모습, 허술한 의복, 꾸밈없는 진술을 보고서 반쯤 멸시하는 태도로 “이 수도승이 나를 이단자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가 나타낸 용기와 확고한 태도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황제도 감격하여 “이 수도승은 참으로 담대함과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말한다.”라고 하였다.

로마 교회의 지지자들은 패배하였다. 그들은 성경에 호소하지 않고 위협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의회의 대변인은 “만일 네가 취소하지 않는다면 황제와 제후들은 이처럼 완고한 이단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루터는 아주 침착하게 “나는 결코 취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하였다.

의원들이 협의하는 동안 루터는 퇴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루터가 최후까지 굴복하지 않고 굳게 선 것은 여러 시대를 통하여 교회의 역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취소할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의회에 출두하였다. 그의 주장을 부인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다시 질문이 주어졌다. 그는 “본인은 이미 대답하였으니 더 이상 다른 대답을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교황 측의 지도자들은 국왕과 귀족들도 두려워 떨게 했던 자신들의 권력이 일개 비천한 수도승에게 이처럼 무시당한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위엄과 침착한 태도로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였다. 그의 말에는 교만한 태도나 격렬한 감정이나 허위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자기 주위에 높은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도 다 잊어버리고, 교황이나 주교나 왕이나 황제보다도 더욱 위대하신 분 앞에 있다는 사실만을 깊이 자각하였다. 하나님의 영께서 그 의회에 임재 하셔서 제국의 고위 관리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셨다.

여러 명의 영주가 루터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담대하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감명을 당장에 표시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성경을 연구한 후에 훗날 개혁 운동의 유력한 후원자들이 되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루터의 진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루터의 용기와 침착성과 확고부동한 태도를 바라보았고, 그를 옹호할 결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그는 논쟁할 때 양편을 대조하여 보았고, 진리의 능력이 교황과 왕들과 주교들의 지혜를 패배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교황의 사절은 루터의 진술이 끼친 영향을 보았으며,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 개혁자를 죽이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탁월한 웅변과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한 미천한 수도승 때문에 교황청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젊은 황제에게 역설하였다.

그의 말은 효과를 거두었다. 루터의 답변이 있은 다음 날 카알 황제는 가톨릭교회를 지지하고 옹호할 것이라는 그의 결심을 의회에 알렸다. 루터가 그의 주장을 취소하기를 거절하였으므로 그와 그가 가르친 이단설에 대하여 매우 강력한 조치가 내려졌다. “나는 나의 왕국과 나의 재산, 나의 동료들, 나의 육체, 나의 피, 나의 영혼 그리고 나의 생명까지도 희생할 것이다. …나는…그와 그의 지지자들을 고집 센 이단자들로 파문하고 공식적으로 추방할 것이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을 파멸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루터의 통행권은 존중되어야 하며 안전하게 그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황제는 공표했다.

위험하게 된 루터의 통행권

교황의 사절들은 루터의 통행권이 무시되어야 한다고 다시 주장하였다. 그들은 “100년 전의 후스처럼 그의 몸을 태운 재를 라인강에 뿌려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독일의 제후들은 비록 루터를 대적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와 같은 조치는 나라의 명예를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라며 이를 반대하였다. 그들은 후스가 죽은 후에 계속하여 일어난 재난들을 지적하며 이 같은 두려운 재난이 독일에서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였다.

카알 황제는 이 치졸한 제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비록 신의와 명예가 세상에서 모두 사라진다 할지라도 제후들의 마음에 이 두 가지는 늘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루터의 원수들인 교황의 지지 세력들은 시기스문트가 후스에게 행한 것처럼 루터도 그렇게 취급해 달라고 계속 요구하였다. 그러나 카알 5세는 후스가 공중 앞에서 자기를 결박한 사슬을 보이면서 황제가 약속을 번복한 사실을 생각나게 했던 광경을 상기하고 “나는 시기스문트처럼 얼굴이 붉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카알 황제는 루터가 제시한 진리를 고의적으로 거절하였다. 그는 관습을 버리고 진리와 의의 길을 걷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선조들처럼 로마 교회를 지지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선조들이 받았던 것보다 한층 더 밝은 빛을 받아들이길 거절하였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대대로 내려온 관습을 고수하고 있다. 주께서 그들에게 더욱 밝은 빛을 비춰 주실 때 그들은 선조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빛을 거절한다. 진리의 말씀을 스스로 탐구하지 않고 선조들이 행한 대로 무조건 따라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현재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 더욱 밝은 빛에 대하여 우리는 책임이 있다.

루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일의 황제와 제후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춰지자 성령께서는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탄원하셨다. 마치 빌라도가 천여 년 전에 자기의 자존심을 고집하고 민심을 얻기 위하여 마음의 문을 닫고 구주의 말씀을 저버렸듯이 카알 5세도 세속적인 자존심에 굴복하여 진리의 빛을 거부하기로 결심하였다.

루터를 죽이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온 도시는 흥분하였다. 로마 교회의 속임수와 잔인성을 알고 있는 루터의 친구들은 개혁자가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로 결심하였다. 수백 명의 귀족이 그를 보호하고자 맹세하였다. 집의 대문과 공공 장소에는 루터를 정죄하거나 아니면 그를 옹호하는 문구들이 나붙었다. 그중에는 솔로몬의 의미심장한 글귀도 보였다. “왕은 어리고 신하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전 10:16). 독일 전역에서 루터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가 드높았으므로 그에게 어떤 사고가 발생한다면 독일 제국의 평화는 물론이요 황제의 안전까지도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황제와 의회는 깨닫게 되었다.

로마와 타협하기 위한 노력

작센의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개혁자에 대한 그의 속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끊임없는 경계로써 루터를 지키고 그의 모든 행동과 그의 원수들의 일을 살피고 있었다. 반면에 많은 사람이 루터에 대한 그들의 동정심을 감추려 하지 아니하였다. 스팔라틴(Spalatin)은 “루터 박사님의 좁은 방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라고 기록하였다. 비록 그의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양심을 거스르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달게 받고자 하는 루터의 고결한 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로 하여금 로마와 타협하게 하려는 매우 열렬한 운동이 일어났다. 귀족들과 제후들은 그가 계속 자신의 뜻을 고집하고 교회와 의회에 대항한다면 결국 그는 이 나라에서 추방될 것이며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시 그는 황제의 결정에 복종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렇게 하면 그는 아무것도 두려할 것이 없을 것이었다. 이와 같은 호소에 대하여 루터는 대답하였다. “황제와 제후들 그리고 가장 연약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들이 나의 저서들을 살펴보고 판단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순종하는 일뿐입니다.”

또 다른 권고를 받고 그는 말하였다. “나는 나의 통행권을 포기하는 데 동의합니다. 나의 몸과 나의 생명을 황제의 손에 맡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의회의 결정에 즐겨 순종하기로 하였으나 의회가 성경에 의하여 결정한다는 조건하에서였다. 그는 계속하여 “비록 교황이 수많은 의원에게 둘러싸여 지지를 받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에 관해서는 교황이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도 스스로의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그의 친구와 원수들은 루터가 로마 교회와 결코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일 개혁자가 하나라도 타협했더라면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는 교회를 해방시키는 방편이 되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바를 거리낌 없이 그대로 실천한 이 한 사람의 감화는 당대의 교회와 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모든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황제는 루터가 즉시 집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하였다. 이 통고에 이어 정죄의 선고도 곧바로 내릴 것이었다. 그의 앞길에 캄캄한 구름이 덮여 있었으나 보름스를 출발할 때 그의 마음은 찬미와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루터는 보름스를 떠난 후에 자기의 확고한 태도가 반역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저는 사람이 의지하여 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명예와 수치, 생명과 죽음을 무릅쓰고 가장 열렬히 폐하께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문제에 관해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굴복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굴복하는 것은 사실상 예배 행위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므로 그것은 온전히 창조주에게만 드려져야 합니다.”

보름스에서 돌아올 때 고귀한 교회 지도자들이 파문당한 그 수도승을 환영하였고, 높은 관직에 있는 관리들은 황제의 견책을 받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는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었으나 사람들의 간청에 못 이겨 설교단에 올랐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두어 두겠다고 맹세한 적이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가 보름스를 떠난 지 얼마 후에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황제를 설득하여 루터를 반대하는 포고를 내리도록 하였다. 그 포고는 루터를 가리켜 “사탄이 수도승의 복장을 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라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의 통행권의 기한이 만료되는 즉시 아무도 그를 보호하거나 음식을 주거나 말로나 행동으로 그를 응원하거나 도와주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그는 체포되어 관리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투옥되거나 그들의 재산을 몰수당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은 모두 폐기될 것이고, 이 포고를 위반하는 자는 모두 동일한 처벌을 받을 것이었다. 루터가 출발한 후에 작센의 선제후와 루터에게 호감을 가진 제후들도 곧 보름스를 떠났으므로 황제는 쉽게 이 일에 의회의 찬성을 얻었다. 로마 교회의 지지자들은 기뻐 날뛰었다. 그들은 개혁 사업의 운명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이 작센의 프리드리히를 사용하심

한 사람의 눈이 루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는 참되고 고결한 마음으로 그를 구하고자 결심하였다. 하나님은 작센의 프리드리히 선제후에게 개혁자를 보호하기 위한 계획을 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루터는 수행원들과 분리되었고 숲을 통과하여 격리된 바르트부르크(Wartburg) 산성으로 옮겨졌다. 루터의 은신처는 아주 비밀리에 준비되었으므로 프리드리히 선제후까지도 루터가 숨어 있는 장소를 알지 못했다. 이와 같이 한 것은 선제후도 루터의 소재를 알지 못함으로 그 일을 누설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프리드리히는 개혁자가 안전하게 숨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였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드디어 겨울이 왔다. 그러나 루터는 여전히 갇힌 채 있었다. 알리안더와 그 일당은 그들의 승리를 기뻐하였다. 그러나 개혁자의 등불은 더욱더 밝히 비추어질 것이었다.

바르트부르크에서의 안전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면서 루터는 잠시 동안 격렬한 싸움의 소요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활동적인 생애와 격렬한 투쟁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활동하지 않고 지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고독한 세월을 지내는 동안 교회의 형편이 갑자기 염려가 되었고, 투쟁의 장소에서 몸을 피해 있는 자신이 비겁한 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펜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한동안 그의 원수들은 루터를 침묵케 하였다고 기뻐했으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소책자가 그를 통해 저술되어 독일 전역으로 배포되었다. 그는 또한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그는 거의 1년 동안 바위투성이인 자신의 밧모섬에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 시대의 오류와 죄악을 견책하였다.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공생애의 무대에서 물러나게 하셨다. 조용하고 격리된 산속에서 루터는 세상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사람들의 칭찬도 멈추었다. 그 결과 그는 성공이 가져다주는 자부심과 교만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진리가 가져다주는 자유로 인하여 기뻐할 때 사탄은 그들의 사상과 애정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켜 인간 대리자와 엮으려고 애를 쓰며, 사람들로 하여금 도구에 불과한 인간을 영화롭게 하고 사건을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무시하도록 유도한다. 흔히 칭찬과 존경을 받는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탐구하며 안내를 받는 대신 인간 지도자들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험에서 개혁 사업을 보호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루터를 진리의 해석자로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을 영원한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리게 하기 위해 그를 사람들에게서 떠나 있도록 옮기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엘렌 G. 화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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