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제 7 장 시대적인 인물 루터

교회를 교황권의 암흑에서 순결한 믿음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이다. 그는 시대적인 인물로서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성경 외에는 어떤 것도 신앙의 기초로 삼지 않았다.

루터는 가난한 독일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광부인 아버지는 루터를 법률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여러 시대를 통하여 완성되고 있는 위대한 성전의 건축자로 삼고자 계획하셨다.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먼저 고난과 궁핍과 엄격한 훈련을 통해 평생의 중대한 사업을 위해 그를 준비시키셨다.

루터의 아버지는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수도원 제도의 부패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루터가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수도원에 들어가자 그는 매우 분노하였다. 그 후 2년이 지난 후에야 부자간에 화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루터의 아버지의 견해는 변함이 없었다.

루터의 부모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가르치고자 힘썼다. 그들은 자녀들이 유용한 생애를 살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열렬하고 꾸준하게 노력하였다. 때때로 지나치게 가혹한 징계가 가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혁자는 그 훈련을 불평하지 않고 순종하며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에 다니던 학교에서 루터는 난폭할 정도로 가혹한 취급을 받았다. 때로는 굶주림의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당시에 편만했던 미신적인 종교 분위기는 그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채웠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때가 많았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인자하신 아버지가 아니라 냉혹하고 무정한 심판관이나 무자비한 폭군처럼 여겨졌다.

18세에 에르푸르트(Erfurt)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루터의 장래는 밝아 보였다. 그의 부모는 근면과 절약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기 때문에 그에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루터는 좋은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유년 시절에 형성된 우울하고 어두운 성격도 다소 변화되었다. 주변의 선한 감화력으로 그의 정신력은 신속하게 발달하였고 학업에도 몰두하여 곧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매일 기도로써 하루를 시작하였으며 하나님의 지도와 도움을 끊임없이 간구하였다. 그는 자주 “기도하는 것은 공부의 반 이상을 한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어느 날 루터는 대학 도서관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라틴어 성경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런 책을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책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그는 예배 시간에 회중에게 복음서와 편지서의 일부를 읽어 주는 것을 종종 들었는데 그것이 성경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성경의 전부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두렵고 놀라운 마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때로 잠시 멈추고는 “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책을 주시다니!”라고 탄성을 질렀다. 하늘의 천사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치는 빛이 진리의 보배를 열어 그에게 제시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죄인인 자신의 상태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찾음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발견하고자 열망한 나머지 그는 마침내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수도원 생활에는 매우 비천한 일을 하고 집집을 다니며 구걸하는 훈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죄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필요하다고 믿었고 굴욕을 견뎌 냈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 연구하기를 좋아하였다. 성경 한 권이 수도원 한쪽 벽의 쇠사슬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주 그곳을 찾아갔다. 먹고 자는 시간도 아끼며 그는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는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하였다. 자신의 악한 기질을 극복하기 위하여 금식과 철야를 하고,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기까지 하였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수도승이 수도자의 공로로 천국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분명히 그 자격을 얻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생활을 조금 더 계속했더라면 나는 고행으로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혼의 짐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절망 직전에 이르렀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친구를 보내셨다. 경건한 슈타우피츠(Staupitz)는 루터에게 성경 말씀을 보여 주며 자신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였다. “그대의 죄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대신 구주의 팔에 그대 자신을 맡기라. 그분을 신뢰하라. 그분의 생애에 나타난 의와 그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속죄를 신뢰하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당신에게 보증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신 그분을 사랑하라.” 그의 말은 루터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번민하던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루터는 신부로 임명된 후 수도원에서 나와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의 교수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시편과 복음서와 편지서들에 관해 공개 강의를 하였고 많은 사람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의 친구요 수도원장인 슈타우피츠는 그에게 설교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자기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백성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주저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고심한 후에 친구들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미 성경 지식에 능한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임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진리를 아주 명료하고 힘 있게 제시하였고, 청중에게 말씀에 대한 확신과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루터는 여전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아들이었으며,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조금도 갖지 않았다. 그는 로마를 방문하기 위해 도보로 여행하면서 수도원에서 숙박하였다. 그는 이탈리아에 있는 한 수도원이 너무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목격하고 매우 놀랐다. 수도승들은 화려한 집에 살면서 매우 값진 의복을 입고 진수성찬을 먹으며 살고 있었다. 루터의 마음은 번민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그는 멀리 일곱 봉우리를 가진 도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깊은 감동을 받고 땅에 엎드려 “거룩한 성 로마여! 나는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노라.”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로마 도성에 들어가서 여러 교회를 방문하고, 신부와 수도승들이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를 듣고 요구되는 의식을 행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너무도 놀라웠다. 사제들의 삶은 죄악으로 가득하였고 주교의 입에서는 불경스런 농담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미사를 드리면서도 저속한 말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사치와 방탕이 넘쳐나고 있었고 신성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까지 감행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로마에서 감행되는 모든 죄악과 파렴치한 행동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지옥이 있다면 로마는 그 위에 세워져 있다’라고 사람들이 말할 정도이다.”

빌라도의 계단에서 발견한 진리

당시 교황의 한 조서가 반포되었는데 그것은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자는 누구든지 죄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 계단은 예수께서 재판정을 나오실 때 내려오신 곳으로 당시에는 그것이 기적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졌다고 여겨졌다. 어느 날 루터가 경건한 마음으로 그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는 말씀이 들렸다. 그는 두렵기도 하고 부끄러워 황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그때부터 그는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사람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로마에서 돌아온 후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성경 연구에 더욱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교황의 교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기로 엄숙히 서약하였다. 그는 이제 단순한 수도승이 아닌 공인된 성경의 전도자가 되었다. 애타게 진리를 찾고자 하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목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의 권위에 근거하지 않은 교리는 어떤 것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확고하게 주장하였다.

열렬한 군중은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구주의 사랑에 관한 복된 소식, 그분의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용서와 평안을 얻게 된다는 보증은 그들의 마음에 큰 기쁨을 주었다. 온 세계를 비추어 줄 밝은 빛이 비텐베르크에서 비추어졌으며 이 빛은 세상의 끝이 다가올수록 더욱 밝게 빛날 것이다.

하지만 진리와 오류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항상 존재한다. 구주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루터는 종교 개혁을 일으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뒤에서 떠미신다. …나는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지만 투쟁과 혁명 가운데 던져졌다.”

면죄부 판매

로마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품으로 만들었다.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 자금을 모금한다는 구실로 면죄부가 교황의 권위하에 공공연하게 판매되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지불한 값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당이 세워질 것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교황권의 원수들이 일어나서 가장 성공적으로 교황의 보좌와 그 머리 위에 있는 삼층 면류관을 흔들게 되었다.

테첼은 독일에서 면죄부를 팔도록 공적으로 임명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회적으로나 하나님의 율법으로 볼 때 가장 치욕적인 죄를 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황의 재정을 확보해 주고 그의 무모한 계획을 성취시킬 자로 선택되어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받았다. 그는 어리석고 미신적인 백성을 속이기 위해 그들에게 기괴하고 놀랍게 꾸며 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갖지 못하도록 막았다.

테첼이 마을에 들어가면 그보다 앞서간 심부름꾼은 “하나님과 성부의 은혜가 너희 문에 있을지어다.” 라고 선포하였다. 사람들은 참람된 그 사기꾼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을 친히 맞이하는 것처럼 환영하였다. 테첼은 강단에 올라가 면죄부를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선물이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나중에 범하게 될 모든 죄도 “회개할 필요 없이” 용서받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면죄부는 죽은 자도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돈이 상자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그 순간 속전을 지불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주장하였다.

금과 은이 테첼의 금고로 쏟아져 들어갔다. 돈으로 구원을 사는 것은 회개와 믿음 그리고 죄와의 끈질긴 싸움으로 얻는 구원보다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부록 참조).

루터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시무하는 교회의 신자들 가운데도 면죄부를 산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곧 루터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고 사면을 구했는데 이는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삶을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아닌 면죄부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루터는 그들이 회개하고 삶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 죄로 인하여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였다. 그들은 테첼을 찾아가서 루터가 그들의 면죄부를 받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자 테첼은 격노하며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그는 광장에 불을 피우고 “나는 교황으로부터 이 신성한 면죄부를 반대하는 모든 이단자를 화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라고 소리쳤다.

루터가 사업에 착수함

루터는 강단에서 엄숙하게 경고하였다. 그는 청중에게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밝혀 주는 동시에 사람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죄책감을 감소시키거나 죄의 형벌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고 그저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사지 말고 믿음으로 십자가의 구주를 바라보라고 권면하였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노력했던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평안과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테첼이 면죄부 판매와 불경스런 주장을 계속하자 루터는 거기에 대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항하기로 결심하였다. 마침 기회가 왔다. 비텐베르크성 교회에는 여러 가지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특정한 축제일에는 그것을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그리고 그날 교회에 와서 참회하는 자는 죄를 완전히 용서받는다고 믿었다. 때마침 축제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만성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만성절 전날 루터는 교회로 모여드는 군중의 행렬에 참여하였으며 면죄부 교리에 항의하는 95개의 반박문을 교회 출입문에 붙여 놓았다.

그의 도전은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읽은 후에 사방에 전하였고, 도시 전체가 크게 흥분했다. 이 반박문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고 그 형벌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권세를 교황이나 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결코 위탁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회개와 믿음으로 그것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진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다.

루터가 제시한 문제들은 독일 전체에 퍼졌으며 몇 주일이 못 되어 유럽 전역에 전해졌다. 교회 안에서 퍼져 가고 있는 무서운 죄악을 보고 탄식하면서도 그 기세를 꺾을 방법을 알지 못했던 많은 경건한 로마 가톨릭교인이 루터의 논제를 읽고 크게 기뻐했으며 하나님의 음성이 그 속에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교황청에서 흘러나오는 타락의 물결을 막기 위하여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셨다고 느꼈다. 왕후들과 지방 장관들은 한 번 결정하면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그 교만한 교황청의 권력을 제지하게 된 것을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였다.

자신들의 이익에 위협을 느낀 교활한 교회 지도자들은 격분하였고, 개혁자는 가혹한 고소자들과 맞섰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어떤 새 의견을 주장하게 될 때 어찌 다툼과 논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와 모든 순교자가 죽임을 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기존 가르침을 순순히 따르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원수들의 비난과 그의 동기에 대한 오해와 그의 인격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거센 홍수처럼 루터에게 엄습해 왔다. 그는 학교의 지도자들이 개혁 사업에 기꺼이 참여하고 그와 연합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교회 안에 광명한 새벽이 밝아 오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돌연 지도자들의 격려가 비난과 정죄로 바뀌었다. 정부와 교회 지도자들은 그의 이론이 타당함을 확신하기는 했으나 그 진리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로마 교회의 권위가 침해당하고 교회로 들어오는 많은 수입이 그치게 되고 이로 인해 교회 지도자들의 낭비와 사치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도록 사람을 가르친다면 교황의 보좌는 무너지고 마침내 자신들의 권위도 상실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보낸 사람을 거절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진리를 모두 거역하는 길을 택하였다.

루터는 자신이 지상의 가장 큰 세력에 대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움으로 떨었다. “세상의 왕들과 온 세계가 두려워하는 교황권에 대항하여 일어선 나는 대체 누구인가? …지난 2년간 얼마나 고민하고 슬픔과 낙담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렸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이 끊어졌을 때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에 안기어 평안함을 누릴 수 있었다.

루터는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그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이다. 그대 자신의 노력과 이해력을 의지하지 말라. 성령의 감화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여기에는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다. 악의 세력과 투쟁할 때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루터는 성경만을 주장함

원수들이 전통과 관습을 주장할 때 루터는 오직 성경으로 그들에게 대항하였다. 성경에는 그들이 대답할 수 없는 논증이 있었다. 루터의 설교와 저서로부터 무수한 사람을 각성하고 깨우치는 광선이 나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검처럼 백성의 마음을 뚫고 들어갔다. 오랫동안 인간이 제정한 의식과 지상의 중보자들만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이 이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되었다.

이처럼 루터의 가르침에 사람들의 관심이 널리 퍼져 가자 교황권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루터는 이단을 주장하는 자라는 고소에 답변하기 위하여 로마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의 친구들은 이미 순교자들의 피에 취한 타락한 로마에 루터를 보내는 것은 그를 위험 속에 빠뜨리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루터가 독일에서 심문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 요구는 수락되었고 교황의 사절이 그 소송을 심리하게 되었다. 교황이 그 사절에게 전달한 내용에 의하면 이미 루터는 이단자로 선고받은 상태였다. 따라서 사절단은 “지체하지 않고 형을 집행”하고자 했다. 사절단은 “독일 전역에서 루터를 추방할 뿐 아니라 그에게 동조하는 모든 사람을 추방하고 저주하며 파문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교황은 그 지독한 이단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 루터와 그의 지지자들을 체포하여 로마의 복수의 손에 넘겨주는 일에 협조하지 않는 자는 황제 외에는 국가와 교회의 어떤 고위 관리를 막론하고 모두 파문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문서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원칙은 고사하고 세속적인 정의의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루터는 자기의 입장을 설명하거나 변호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며 심문도 받기 전에 즉결 처분으로 이단자라는 선고를 받았고, 같은 날에 심의와 고소, 재판과 판결이 진행되었다.

루터에게 참된 친구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멜란히톤(Melanchthon)을 비텐베르크로 보내셨다. 멜란히톤은 건전한 판단력과 순결하고 고상한 인격을 갖추고 있었고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단번에 루터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의 온유하고 신중하며 빈틈없는 성격은 과감하고 용감하고 열정이 넘치는 루터의 부족함을 채워 주었다.

심문 장소가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로 지정되었고, 개혁자는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도중에 살해의 위협이 있음을 안 친구들은 그에게 가지 말도록 간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예레미야처럼 투쟁과 싸움의 사람이다. 그들의 협박이 더하면 더할수록 나의 기쁨은 증가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나의 명예와 명성을 빼앗았다. …그들은 내 생명을 불과 몇 시간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만은 그들이 빼앗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세상에 전파하고자 하는 사람은 매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루터가 아우구스부르크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교황의 사절은 매우 기뻐하였다.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골치 아픈 이단자가 이제 로마의 권세 아래 들어왔으며 그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었다. 교황의 사절은 루터로 하여금 자신의 주장을 취소하게 하든지 그것이 안 되면 그를 로마로 보내어 후스와 제롬과 같은 운명에 처하도록 계획하였다. 그는 루터로 하여금 통행권 없이 출두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개혁자는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황제의 보호를 보증하는 문서를 받기까지 교황의 사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교황의 사절은 루터를 설득하기 위한 술책으로 이제 그를 부드럽게 다루고자 하였다. 그들은 매우 우호적인 태도로 루터에게 요구하기를 논쟁이나 의문을 제기하지 말고 무조건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고 굴복하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루터는 자신이 교회를 존중하고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과 그동안 그가 가르쳐 온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이 있다면 기꺼이 답변하겠다고 대답했다. 또한 대학에서 자기의 교리를 검토하겠다면 흔쾌히 응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오류가 증명되기도 전에 그의 가르침을 취소하라는 요구는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교황 측의 반응은 오로지 “취소하라. 취소하라.”는 말뿐이었다. 루터는 자신의 주장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므로 진리를 부인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루터의 주장에 대답할 수 없게 된 교황의 사절은 비난과 욕설과 책망을 퍼부으면서 그를 위협했고, 교회의 전통과 교부들의 말을 늘어놓으면서 루터에게 더 이상 말할 기회를 주지 아니하였다. 마침내 루터는 그의 답변을 문서로 제출하라는 허락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기록된 것들을 통해 다른 사람의 판단에 호소할 수 있고 한편으로 교만하고 위압적인 태도로 함부로 말하는 폭군의 양심을 울리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그에게 공포감을 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52

두 번째 회견에서 루터는 성경의 많은 구절을 인용하며 명료하고 간결하고 힘 있게 자신의 견해를 글로 제시하였다. 그는 그것을 큰 소리로 낭독한 후에 추기경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쓸데없는 말과 당치 않은 인용구의 수집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던져 버렸다. 이에 루터는 담대히 일어나서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근거로 제시하는 그의 억지에 반박하였다.

교황의 사절은 자제력을 잃고 분노에 사로잡혀서 외쳤다. “취소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로마로 보내겠다.” 마지막으로 그는 거만하고 화난 목소리로 “취소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루터는 즉시 친구들과 함께 그곳에서 퇴장함으로 자신의 견해를 취소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이것은 추기경이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이제 추기경의 지지자들만 남게 되었으며 계획이 실패한 것에 대해 분노하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이 제시한 주장의 진실성과 신뢰성뿐 아니라 그들이 나타낸 정신을 비교하며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개혁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단순하고 겸손하고 확고한 태도로 진리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교황의 사절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만한 성경 말씀을 한 구절도 인용하지 못한 채 거만한 태도로 화를 내면서 “취소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로마로 보내겠다.”라고 소리칠 뿐이었다.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피신함

루터의 친구들은 그가 더 이상 체류하는 것이 무익한 일임을 알고 그에게 즉시 비밀리에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도록 권유했다. 그리하여 그는 지방 장관이 보내 준 안내자를 따라 새벽에 말을 타고 아우구스부르크를 떠났다. 그는 어두운 시가지를 몰래 빠져나갔다. 잔인한 원수들은 마음을 모아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가 도시의 성벽에 있는 작은 문에 이르자 문이 열렸고 그는 안내자와 함께 성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하여 루터는 교황의 사절이 자신의 탈출을 알아채기 전에 박해자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곳으로 피할 수 있었다.

루터가 도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교황의 사절은 매우 분개하였다. 그는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를 단호히 처단함으로 큰 영예를 얻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제 그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작센의 통치자인 프리드리히(Frederick)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루터를 신랄히 비난하고 프리드리히로 하여금 그를 로마로 보내든지 아니면 작센에서 추방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당시 프리드리히는 아직 개혁자의 주장을 잘 알지 못했지만 루터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개혁자의 오류가 입증되지 않는 한 프리드리히는 그의 옹호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교황의 사절에게 보내는 회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하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루터 박사와 만남을 가진 것에 대하여 분명히 만족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하가 그의 오류를 그에게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그의 견해를 취소하라고 강요하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영지의 학자들 가운데 아무도 루터의 교리가 불경하고, 비그리스도인적이며, 이단적이라고 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통치자는 교회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러한 선한 영향력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은근히 기뻐하였다.

개혁자가 교회 출입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글들은 각처에서 성경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독일 각지에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학생이 대학교로 몰려들었다. 난생처음 비텐베르크를 본 청년들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고 이 성에서 진리의 빛이 비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라고 외쳤다.

이때까지 루터는 단지 로마의 오류에서 부분적으로만 돌아섰을 뿐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교황의 교서를 읽고 있다. …나는 교황이 적그리스도인지 아니면 그분의 사도인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교황의 교서는 그리스도를 너무도 잘못 나타내고 있고 그분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의 공격에 로마는 점점 더 격노했다. 광신적인 반대자들 심지어 교회에 속한 대학들의 박사들까지도 그 반역적인 수도승을 죽이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루터의 방패가 되셨다. 그의 교리는 “민가와 수도원…귀족의 저택과 대학과 왕의 궁전 등으로 퍼져 나갔다.”

그즈음에 루터는 자신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이미 보헤미아의 개혁자 후스가 주장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루터는 “우리 모두 곧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와 나 자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후스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 진리는 이미 1세기 전에 전파되고 불태워졌다.”라고 말하였다.

루터는 대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대학이 열렬히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그것을 청년들의 마음에 새겨 주지 못하여 지옥의 문이 될까 두렵다. …학생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단히 연구하도록 가르치지 않는 교육 기관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이 호소는 독일 전역에 신속히 전달되어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온 나라가 분기했다. 루터를 반대하는 자들은 그에게 더욱 단호한 태도를 취해 주기를 교황에게 탄원했다. 그의 교리들은 즉시 정죄의 선고를 받아야 한다고 공포되었다. 개혁자와 그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모두 파문될 것이었다.

무서운 위기

이것은 종교 개혁에 있어서 무서운 위기였다. 루터는 그에게 엄습해 오고 있는 폭풍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지지자이자 방패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굳게 신뢰하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뭇잎 하나도 하늘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겠는가? 말씀이 육신이 되셨던 분도 돌아가셨는데 그 말씀을 위하여 죽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교황의 교서가 루터에게 전달되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것을 불경하고 거짓된 것으로 멸시하고 배격한다. …그것으로 정죄받으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더욱 큰 자유를 누리고 있다. 나는 드디어 교황이 적그리스도이며, 그의 보좌는 곧 사탄의 권좌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로마의 교서가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연약하고 미신적인 사람들은 교황의 명령 앞에서 떨었다. 많은 사람이 교회 개혁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것은 너무도 큰 희생이라고 생각하였다. 개혁자의 시도가 그냥 이렇게 마쳐질 것인가?

그러나 루터는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담대하게 자신에게 내린 정죄의 선고를 로마로 돌려보내고, 모든 계층의 시민 앞에서 교황의 교서를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심각한 투쟁이 이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업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쳐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부르셨으니, 나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되므로 그들은 이를 두려워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이나 위대한 사람을 선지자로 택하지 않으시고 지위가 낮고 비천한 사람들을 택하셨다. 목자인 아모스도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곧 왕들과 제후들과 제사장들과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을 책망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이토록 담대한 루터도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를 떠나고자 결심하기까지는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즈음에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비록 나에게는 나를 지지해 주는 성경이 있지만 나 홀로 교황과 맞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교황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술에서 그처럼 자주 반복된 다음의 질문에 대하여 괴로운 마음으로 얼마나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던가? ‘너 혼자만 현명한가? 너 외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는 말인가? 만일 네 자신이 틀렸고, 많은 사람이 너의 오류를 받아들인 결과로 영원히 멸망받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흠 없는 말씀으로 이런 의심을 극복하도록 내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까지 나는 나 자신 그리고 사탄과 싸워야 한다.”

로마 교회는 개혁자와 최종적으로 결별하였음을 선언하고, 그를 하늘의 저주를 받은 자로 탄핵했으며, 그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은 정죄가 임한다는 내용으로 새 교서를 내렸다.

하나님이 특별히 그 시대에 적합한 진리를 증거 하도록 사용하시는 모든 사람은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루터 시대에는 그 시대에 필요한 현대 진리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회를 위한 현대 진리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루터의 반대자들과 같이 여전히 진리를 환영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은 초기 개혁자들보다 더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진리와 오류,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는 세상 역사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요 15:19~20; 눅 6:26 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엘렌 G. 화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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