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장 폭풍의 시기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믿음을 가졌다고 공언하는 신자들이 교회의 참된 소망을 바라보며 보다 깊은 그리스도인 경험의 필요성을 깨우치도록 돕기 위해 노력하였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회개와 거듭남의 필요를 깨닫게 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사람들을 어떤 종교 단체나 종파로 개종시키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단체와 종파들을 대상으로 활동하였다.”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교파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였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을 즐거워하며 비록 내가 깨달은 것처럼 깨닫지 못한 이들도 재림 교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별개의 단체를 만들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의 활동으로 회개한 대다수의 사람은 여러 기성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재림 교리를 배척하기로 결의하였고 그들의 교인들이 재림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하거나 심지어 재림의 소망을 교회에서 말하는 일까지도 금하였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사랑하였고 거기서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언을 연구하는 권리를 박탈당하자 그들은 사람의 말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여야 함을 깨달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던 교회를 떠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다. 1844년 여름에 약 5만 명의 교인이 여러 교회에서 나왔다.
이 무렵 미국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세속적인 풍습을 따르는 자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는 한편 참된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의 수는 감소하고 있었다. 그해 말에 이르러 나라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급격한 타락의 징후가 보였다. 교회 강단과 인쇄물을 통하여 이런 문제가 널리 논의되었다.
성경주석의 저자이며 필라델피아의 한 대형 교회 목사인 반스(Barnes)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는 아무런 각성도 회개도 볼 수 없고, 은혜 안에서 자라 가는 어떤 표적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구원 문제에 대하여 연구하거나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 …세속적인 사상만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모든 교파에서 동일하다.”
같은 해 2월에 오벌린 대학의 피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개신교회가 도덕적 개혁 문제를 무시하거나 적대시하고 있다. …영적 무관심은 거의 모든 교회에 보편화되어 있고 두려울 만큼 심각하다. 전국의 종교 잡지가 그 사실을 잘 증거 하고 있다. …교인들은 유행을 좇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춤과 연회로 쾌락을 즐기는 모임에서 불경건한 자들과 손을 잡고 있다. …교회는 개탄스러울 정도로 타락하고 있다. 그들은 주님께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갔으며 주님께서도 그들을 떠나셨다.”
빛의 거절
국가와 교회와 개인에게 드리워지는 영적 암흑은 하나님 편에서 은혜를 거두심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늘로부터 오는 빛을 거절하기 때문에 생긴다. 유대 백성은 세속적 사물에 몰두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잊어버림으로 메시아의 초림에 대해 무지하였다. 그들은 불신으로 구주를 거절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유대 민족을 구원의 축복에서 끊어 버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진리를 거절한 자들은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았다(사 5:20).
복음을 거절한 후에 하나님의 임재가 더 이상 그들 가운데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유대인들은 옛적부터 내려오는 의식들을 계속 고수하였다. 다니엘의 예언은 분명하게 메시아의 오실 시기를 지적하였고 그분의 죽으심을 직접적으로 예언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그 예언을 감히 연구하지 못하였고 마침내 랍비들은 메시아의 때를 계산하여 알아내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눈멀고 완고한 상태로 구원의 은혜로운 선물에 무관심하였고 복음의 축복을 무시하고 하늘에서 오는 빛을 거절하는 데 대한 엄숙하고 두려운 경고에 유의하지 않게 되었다.
자기의 기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무에 대한 각성을 억눌러 버리는 자는 마침내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거룩한 진리를 배척하면 교회는 흑암에 싸이고 믿음과 사랑이 식고 분열이 생긴다. 교인들은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쏟게 되고 죄인들은 더욱 완악해진다.
첫째 천사의 기별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세상의 부패한 감화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 이 기별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에 한 경고를 주셨는데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한 죄악을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그 기별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면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부어졌을 것이다. 교회는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던 사도 시대의 연합과 믿음과 사랑의 복된 상태로 돌아갔을 것이다(행 4:32; 2:47).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들은 사도가 기록한 그대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그 연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사도는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엡 4:3~5)라고 말한다.
재림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여러 교파에서 나왔으며 그들의 교파적 장벽은 무너졌다. 서로가 가진 신조의 차이들은 산산이 부서졌다. 재림에 대한 그릇된 견해는 교정되었다. 모든 잘못은 바르게 고쳐지고, 각 사람의 마음은 따뜻한 우정으로 연합하고, 사랑과 기쁨이 그들을 지배하였다. 만일 모든 사람이 그 교리를 받아들였다면 그들 모두에게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파수꾼으로서 목사들은 예수께서 오실 징조를 먼저 분별해야 했으나 그들은 선지자들의 증언이나 시대의 징조에서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 세속적 야망이 마음을 채웠으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식어 버렸다. 그리하여 재림의 교리가 그들에게 제시되자 그것은 그들에게 편견과 불신을 일으킬 뿐이었다. 그리스도 당시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증언은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요 7:48)라는 질문으로 도전을 받는다. 많은 사람이 예언서가 봉해진 책이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목사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였고 재림 기별에 관하여 듣기를 거절하였다. 그 밖의 사람들은 비록 진리를 깨닫기는 하였지만 출교를 당할까 염려하여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였다. 교회를 시험하고 정결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기별은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첫째 천사의 경고를 거절한 것이 1844년에 교회 안에 존재한 세속화와 배교와 영적 죽음이라는 무서운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이었다.
둘째 천사의 기별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첫째 천사의 뒤를 이어 둘째 천사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계 14:8)라고 선포한다. 바벨론이라는 말은 “바벨”(Babel)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혼잡”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그 말은 여러 모양의 거짓 종교와 배교한 신앙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17장에는 바벨론이 여인으로 표상되었는데 성경에서 여인은 교회를 상징하며 정숙한 여인은 순결한 교회를 음란한 여인은 배교한 교회를 가리킨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결혼으로 묘사한다. 주께서는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호 2:19)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렘 3:14)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사도 바울도 그와 동일한 표상을 사용하여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라고 말하였다.
영적 간음
교회가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애정을 버리고 세속적 사물에 대한 욕망에 빠져서 그리스도께 충실하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을 성경은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것으로 비유한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가 다음과 같이 상징적인 말로 묘사되어 있다.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렘 3:20).
사도 야고보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17장의 여자(바벨론)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 여자는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바벨론은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계 17:4~6, 18)라고 선포되어 있다.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국의 왕들을 지배한 세력은 로마이다. 자줏빛과 붉은빛과 금과 보석과 진주는 로마 교황이 취했던 거만한 위세를 가리킨다. 또한 “성도들의…피에 취한지라”라는 말은 그리스도교를 따르는 자들을 그처럼 잔혹하게 박해한 로마 교회 외에 다른 어떤 세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바벨론은 또한 “땅의 왕들”과 불법적 관계를 맺는 데 대하여 비난을 받고 있다. 유대교가 주님을 떠나 이교도와 더불어 동맹을 맺음으로 음녀가 되었듯이 로마 교회도 세속 권력의 지지를 받기 위해 타락함으로 그와 동일한 죄의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바벨론은 “음녀들의 어미”라고 불린다. 그 음녀의 딸들은 바벨론의 교리와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그 음녀의 본을 이어받아 세상과 연합하기 위해 진리를 희생하는 교회들을 가리킨다.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포하는 요한계시록 14장의 기별은 한때는 순결하였으나 후에 타락한 종교 단체들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 기별은 심판의 경고 후에 주어지는 것이므로 말세에 선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에만 적용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여러 세기 전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호소를 듣고 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직도 바벨론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종교 단체에 속해 있는가? 그들은 개신교 신앙을 가진 여러 종류의 교회에 속해 있다. 그 교회들은 형성 초기에는 하나님과 진리를 위하여 고상한 토대 위에 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저주와 멸망으로 인도한 그 욕망 곧 불경건한 자들의 행동을 모방하고 그들과 사귀고자 한 그 욕망 때문에 무너졌다.
세상과의 연합
많은 개신교회가 “땅의 임금들”과 불의의 관계를 맺은 로마 교회의 본을 따르고, 국교회들은 정부와 손을 잡고, 그 밖의 다른 교파들은 세상의 인정을 받고자 애쓰고 있다. “혼잡”을 의미하는 “바벨론”은 그들의 교리가 성경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면서도 상호 용납될 수 없는 신조들을 가지고 수많은 교파로 나누어진 개신교 단체들에 적용될 수 있다.
로마 가톨릭의 한 저서는 “만일 로마 교회가 성인들을 숭배함으로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다면 열 개의 교회를 마리아에게 바치고 한 개의 교회를 그리스도께 바친 로마 교회의 딸, 영국 국교회도 같은 죄를 범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홉킨스(Dr. Hopkins)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 교회만이 적그리스도의 정신과 행동을 가지고 있다고 한정시킬 이유가 없다. 개신교회들도 적그리스도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부패와 죄악에서…완전히 개혁했다고 볼 수 없다.”
장로교회가 로마 교회에서 분리된 데 대하여 거드리(Guthrie)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300년 전에 우리 교회는 펼쳐진 성경을 군기로 삼고 ‘성경을 탐구하라’는 표어를 내걸고 로마 교회의 문을 박차고 행군하여 나왔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완전히 나왔는가?”
복음에서 떠난 첫걸음
그러면 큰 배교의 발단은 무엇인가? 어떻게 교회가 복음의 순수성에서 떠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교회가 다신교의 관습을 따름으로 이교도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든 데 그 원인이 있다. 물론 사도들이 생존하던 당시의 교회는 비교적 순결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2세기 말엽에 이르러 대다수의 교회는 새로운 형식을 받아들임으로 초기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그 후계자들은 새로 회개한 자들과 함께 신앙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버렸다.” 새 신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인 신앙의 높은 표준을 낮추어 버린 결과로 “다신교가 홍수처럼 교회 안으로 밀려들면서 그 풍속, 행동, 우상 등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스도교는 세상 지도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많은 사람이 표면상으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다신교도로 남아 있으면서 은밀하게 그들의 우상을 숭배하였다.”
개신교회라고 자칭하는 거의 모든 교회에서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개혁 정신을 가졌던 개신교의 창시자들이 죽은 후에 그 후계자들은 사업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선조들의 신조들을 고집하면서도 실상은 개혁자들이 깨달은 진리에서 조금도 진보하지 않았고 오히려 선조들이 남긴 겸손, 극기, 세상을 포기하는 모본에서 멀리 떠나갔다.
슬프게도 인기 있는 교회들이 성경의 표준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 있는가! 웨슬리는 돈을 올바르게 사용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불필요하거나 값비싼 의복, 쓸데없는 장신구 등으로 단순히 눈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귀중한 재정을 낭비하지 말라. 주택을 꾸미기 위해 화려한 가구를 사들이거나 비싼 그림을 거는 일 등에 금전을 낭비하지 말라. …고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당신을 취미가 고상하며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칭찬을 구해야 한다.”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 세상에서 인기를 얻는 일로 바뀌었다. 위정자, 정치가, 법률가, 학자, 실업가들이 세속적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교회에 들어온다. 이런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면 그들은 교회의 재정을 후원하게 되고 그 후원을 받은 종교 단체는 한층 더 인기를 얻게 된다. 호화롭고 장엄한 교회들이 세워진다. 예배자들은 유행을 따르는 값비싼 옷을 입고 모여든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데 재능이 있는 목사는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 그의 설교는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그리하여 세상 풍조를 따르는 죄악은 경건의 가면 아래 숨겨진다.
뉴욕의 인디펜던트(Independent) 잡지의 한 기자는 감리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를 나누는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다. 양편의 열성분자들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차이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쾌락을 추구하는 이런 풍조 속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극기와 자아 희생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은 교회에서 자금이 필요하면 아무도 바치고자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박람회, 연극, 모의 재판, 골동품 감상회, 시식회 등과 같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모임에 참여한다.”
로버트 앳킨스(Robert Atkins)는 런던에서 한 그의 설교에서 영국의 영적 쇠퇴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배교, 배교, 배교가 각 교회의 정면에 새겨져 있다. 그들이 그것을 알고 느낀다면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바벨론에 선고된 큰 죄는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인 죄이다. 이 진노의 포도주는 그가 세상의 권세 있는 자들과 교제함으로 받아들인 거짓 교리들을 의미한다. 그는 성경의 분명한 말씀과 반대되는 교리를 가르침으로 세상에 부패한 감화를 끼치고 있다.
세상이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이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조에 여러 혼란과 모순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어떤 것을 진리로 믿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회개하지 않은 세상의 죄에 대하여는 교회에 그 책임이 있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1844년에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당시의 교회들은 재림 기별의 빛을 거절한 결과로 도덕적 타락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그 타락이 끝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계속해서 거절함으로 더 깊이 타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아직은 모든 나라를 그렇게 만들지는 못했다. 세상과 타협하고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무시하는 정신은 개신교의 모든 교회 안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그 교회들은 둘째 천사의 엄숙하고 두려운 선고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배교는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사탄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활동할 것인데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할 자들은 “거짓 것을 믿게”(살후 2:9~11) 될 것이다. 각 교회가 세상과 완전히 연합할 때 바벨론의 타락은 절정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요한계시록 14장 8절의 완전한 성취는 장래에 일어날 일이다.
바벨론을 구성하고 있는 교회들 안에 영적 암흑이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큰 무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 중에는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기별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더욱 밝은 빛을 갈망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속해 있는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찾고자 하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아직 바벨론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곳에서 떠나도록 부름을 받을 시기를 보여 준다. 세상에 전해질 최후의 이 기별을 통해 사업이 끝날 것이다. 진리의 빛은 그것을 받고자 마음을 열고 있는 사람들을 비출 것이며, 바벨론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내 백성아 거기서 나”(계 18:4)오라는 호소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