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제 25 장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계 11:19). 하나님의 언약궤는 지성소 곧 성소의 둘째 칸에 있다.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인 지상 성막의 사역에 있어서 지성소는 오직 대속죄일에만 성소의 정결을 위하여 열렸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언약궤가 보였다는 말은 1844년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마지막 사역을 위해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실 때 지성소가 열린 것을 말한다. 주께서 지성소 사역을 위하여 그곳에 들어가실 때 믿음으로 그들의 대제사장을 따라간 자들은 언약궤를 보았다. 성소 문제를 연구함에 따라 그들은 구주의 봉사가 바뀐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분께서 지금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봉사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지상 성막의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새긴 두 돌판이 들어 있었고 그 위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져 있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자 언약궤가 보였다. 하늘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율법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분의 손가락으로 돌비에 쓰신 율법이 보관되어 있다.

하늘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은 원본이며 돌판에 새겨지고 모세를 통해 오경에 기록된 것은 그 원본을 옮긴 사본이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된 사람들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하신 구주의 말씀의 뜻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마 5:18). 하나님의 뜻의 계시요 그분의 품성의 사본인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히 존속되어야 한다.

십계명의 중심에는 안식일 계명이 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창조주의 안식의 날을 무시하고 넷째 계명을 범하여 온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그들은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게 된 이유를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십계명 중 넷째 계명이 폐하여졌거나 안식일이 변경된 증거를 성경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고자 정직하게 노력하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나타냈다.

그런데 이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늘 성소에 관한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율법을 시인하고 넷째 계명의 안식일도 당연히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타내는 성경 구절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반대한 이유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열어 주신 문은 닫고 하나님이 닫으신 것은 열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지성소의 문을 열어 보이셨다. 넷째 계명은 거기 보관되어 있는 율법의 한 부분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성에 관한 빛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것이 요한계시록 14장이 제시하는 진리임을 발견하였다. 그 기별은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지상의 거민들을 준비시키게 될 삼중으로 된 경고의 기별이었다(부록 참조).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기별은 구주의 중보 사역이 끝나고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을 데리러 오시기까지 선포되어야 할 진리를 말한다. 1844년에 시작된 심판은 모든 사람 곧 산 자와 죽은 자의 판결이 끝나고 인류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기가 마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심판의 때에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이 기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라고 명한다. 이 기별을 받아들인 결과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라는 말씀이 주어진다(계 14:7, 12).

심판의 날을 위한 준비로 사람들은 품성의 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 그는 또한 믿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임을 언급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 2:12, 16, 13; 히 11:6; 롬 14:23.)

첫째 천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하늘과 땅의 창조주로 경배하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이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순종이 없으면 어떤 예배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부르심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경배할 의무가 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 96:5; 100:3; 사 40:25~26; 45:18 참조).

요한계시록 14장은 인류에게 창조주를 경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이 계명 중 하나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나타낸다. “일곱째 날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0~11). 또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관하여 “이것이…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겔 20:20)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인류가 오늘날까지 안식일을 지켰더라면 안식일은 사람을 예배의 대상이 되는 창조주께로 이끌었을 것이며 우상 숭배자와 무신론자와 회의론자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식일 준수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참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기별은 인류에게 특별히 넷째 계명을 지키라는 요구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가진 자들과 대조되는 다른 무리를 보여 준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계 14:9~10). 이 기별을 이해하려면 여기에 사용된 표상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짐승, 우상, 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용의 정체

이 상징들은 요한계시록 12장의 예언에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 그를 죽이려 한 용은 사탄이며(계 12:9), 그는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헤롯의 마음을 충동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최초의 몇 세기 동안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을 괴롭힌 사탄의 대리자였으며 다신교가 그 나라에서 압도적 세력을 가진 종교였다. 그러므로 용은 원래 사탄을 대표하지만 그것은 또한 이교 로마를 상징하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에는 또 다른 짐승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표범과 비슷하고”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 이 표상은 많은 개신교도들이 믿는 바와 같이 한때 고대 로마 제국이 쥐고 있던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계승한 교황권을 나타낸다. 표범과 비슷한 이 짐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계 13:2, 5~7). 다니엘 7장에 기록된 작은 뿔에 대한 묘사와 거의 같은 이 예언은 틀림없이 교황권을 가리킨다.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이것은 삼 년 반 혹은 다니엘 7장의 1,260일과 같은 기간으로써 그것은 교황권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기간이다. 그 기간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교황이 최상권을 쥐게 된 서기 538년부터 1798년까지의 기간이다. 1798년에 교황이 프랑스군에 사로잡힘으로써 교황권이 치명상을 입고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다.

새로운 세력이 일어남

여기 또 다른 표상이 나온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계 13:11). 그 짐승의 모양과 등장 상황을 볼 때 그것이 표상하는 나라는 이미 나타났던 상징들이 대표한 세력들과는 같지 않다. 세계를 지배한 강국들은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단 7:2) 때에 올라오는 맹수들로 다니엘에게 나타났다.

그러나 새끼 양과 같이 두 뿔을 가진 짐승은 “땅에서 올라”왔다. 이와 같은 모양으로 표상된 나라는 자기 스스로를 확립하기 위하여 다른 세력을 넘어뜨리는 대신 누구에게도 점령된 일이 없는 지역에서 일어나 점진적으로 그리고 평화롭게 성장하는 나라이다. 그 나라는 인구가 많고 전쟁이 그칠 새가 없는 구대륙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그 나라는 신대륙에서 찾아야 한다.

신대륙에서 일어난 어떤 나라가 1798년에 세력을 얻어 전도유망한 힘을 보여 주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가? 오직 한 나라가 이 예언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미국이다. 이 나라의 기원을 묘사하면서 역사가들은 무의식중에 성경 기자의 말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한 유명한 저술가는 “빈터에서 일어난 이 나라의 신비” 그리고 “씨앗이 소리없이 싹이 트고 자라듯 우리는 성장하여 큰 나라가 되었다.”라고 기술하였다. 1850년에 유럽의 한 잡지는 미국은 “부상하는” 나라이며 그것은 “땅의 침묵 속에서 나와서 날마다 세력과 부를 더해 가고 있다.”라고 묘사하였다.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두 뿔 가진 새끼 양 같은 짐승은 어리고 순진하고 온순한 특성을 나타낸다. 정치적 압박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 온 사람들은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큰 기초로 삼는 정부를 세우기로 결심하였다. 독립선언서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헌법은 국민에게 자치권을 보장하고, 투표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신앙의 자유도 보장되었다. 민주 공화정과 개신교의 원칙이 국가의 기본 원칙이 되었으며 이것이 능력과 번영의 비결이 되었다. 모든 그리스도교국에서 압박과 억압을 당하던 사람들이 동경과 희망을 가지고 이 나라로 이주해 왔다. 수백만 명이 이 나라에 상륙함으로써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일어나게 되었다.

뚜렷한 모순

그러나 새끼 양과 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은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계 13:11~14)라고 말한다.

새끼 양과 같은 뿔과 용과 같이 말하는 소리는 그 나라가 공언하는 바와 실제적 행동이 놀라울 만큼 모순됨을 가리킨다. 국가가 “말한다”는 것은 나라의 입법과 사법상 권위를 행사함을 의미한다. “용처럼 말”하고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쓴다는 예언은 용과 표범과 같은 짐승으로 표상된 나라들이 나타낸 편협한 정신과 박해의 정신을 드러낼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뿔 가진 짐승이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말은 이 나라가 교황권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사람들을 강요할 것을 나타낸다.

그와 같은 행동은 그 정부의 원칙 즉 자유 제도의 정신, 엄숙하고 명백한 독립 선언과 헌법에 배치되는 일이다. 그 나라의 헌법에는 “국회는 종교의 설립이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지 못하며” “미합중국의 어떤 공직에 속한 관리의 자격으로도 종교적 조건을 요구하지 못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자유에 대한 이와 같은 안전책이 무시될 것이 예언 가운데 나타나 있다. 새끼 양같이 두 뿔을 가진 짐승은 순결하고 온순하고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용처럼 말하고 있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여기에 입법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부의 형태가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것은 미국이 예언에 나타난 바로 그 나라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러면 “짐승의 우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두 뿔 가진 짐승이 만들며 처음 짐승을 드러내는 우상이다. 이 우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짐승 곧 교황권의 특징에 대하여 연구해야 한다.

초기 교회가 복음의 단순함에서 떠나 이교의 의식과 풍습을 받아들임으로써 부패하자 교회는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교회는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기 위하여 세속 권력의 도움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를 지배한 교회 곧 교황권이 이단을 징벌하기 위해 확립되었다. 미국이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려면 종교 세력이 정부를 지배하고 교회가 자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국가 권력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로마 교회의 발자취를 따라간 개신교회는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유사한 욕망을 나타냈다. 영국 국교회가 오랫동안 자기 교회를 반대하는 자들을 박해한 것이 그 실례이다. 16~17세기 동안 국교도가 아닌 목사나 일반 신도들은 벌금, 투옥, 고문, 순교를 당했다.

초기 교회는 배교함으로 세상 정부의 도움을 구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교황권 곧 짐승을 위한 길이 마련되었다. 바울은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살후 2:3)라고 말하였다.

성경은 1세기에 나타났던 것과 같은 교회의 타락이 예수님의 재림 전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딤후 3:1~5).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딤전 4:1).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하는 모든 자는 “거짓 것을 믿게 하”(살후 2:9~11)는 미혹에 빠지도록 버려둔 바 될 것이다(살후 2:9~11). 이와 같이 불경건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1세기에 나타났던 것과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개신교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조의 큰 차이 때문에 강요된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개신교 각 교파 사이에서 공통적인 교리를 근거로 한 연합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와 같은 연합을 이루려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문제들에 관한 논의는 피할 수밖에 없다. 또한 완전한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제력을 사용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미국의 주요 교회들이 공통적인 교리로 연합하고, 자기들의 교리를 국가가 강제로 지키게 하여 그들의 제도를 강압적으로 유지하게 되면 개신교 국가인 미국은 로마 교회처럼 교권 정치의 우상을 만들게 되고 그 필연적 결과로 이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법률적 형벌을 가하게 될 것이다.

짐승과 그 우상

두 뿔 가진 짐승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계 13:16~17) 한다. 그런데 셋째 천사는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라”라고 경고한다.

예배를 강요하는 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의 표범 같은 짐승으로 표상된 교황권이다. “짐승의 우상”은 국가 권력으로 자신의 교리를 강요하며 그 세력을 키우고 있는 타락한 개신교 단체를 가리킨다. “짐승의 표”는 계속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는 자가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와 짐승을 따르는 자의 구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그것을 범하는 데 있음이 분명하다.

짐승과 그의 우상의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는 것이다. 다니엘은 작은 뿔 곧 교황권에 대해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라”(단 7:25)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 동일한 세력을 하나님보다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불법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교황권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킴으로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고자 하였다. 그리고 율법이 변경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고집하는 자는 그 율법을 변경시킨 자에게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셈이 된다. 이와 같이 교황권이 변경한 율법에 순종하는 행위는 하나님 대신 교황에게 순종하는 표가 되는 것이다.

교황권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하고자 하였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둘째 계명을 율법에서 빼 버리고, 넷째 계명은 제칠일 안식일 대신 첫째 날을 지키라고 고쳐 버렸다.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변경이 있을 것을 미리 내다본 성경은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넷째 계명의 변경은 바로 이 예언의 정확한 성취이다. 여기서 교황권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공공연하게 높이고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뚜렷한 특징은 하나님의 창조의 표가 되는 넷째 계명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로 나타난다. 반면에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은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짓밟고 로마 교회가 만든 제도를 높인다. 교황이 거만한 주장을 한 첫 경우가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키도록 강요한 것이다(부록 참조). 그러나 성경은 제칠일을 주의 날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변경하셨다는 주장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반증된다.

신약의 완전한 침묵

개신교도들은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거나 혹은 일요일 준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 등이 신약 성경에 명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음을” 대체적으로 시인한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때까지는 그날(안식일)에 관한 아무런 변경이 없었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사도들이 제칠일 안식일을 폐지하고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라고 명령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자신들이 안식일을 변경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개신교회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이 거룩한 날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른 초기 교회가 토요일을 대신하여 일요일을 지키게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제칠일이 아닌 첫째 날을 성별하여 지킨다.”

가톨릭교회의 저술가들은 다음의 글을 자신들의 권위의 표로 삼는다. “개신교도들이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꾼 바로 그 사실을 용납하는 것이며 가톨릭교회가 모든 축제일을 제정하고 사람들을 정죄할 권세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변경이야말로 로마 교회의 권위의 표 곧 짐승의 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로마 교회는 아직도 자신의 최상권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개신교회들은 성경의 안식일을 부인하고 로마 교회가 제정한 안식일을 받아들임으로써 사실상 이 주장을 시인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로마 교회와 자신들을 분리시킨 원칙 곧 “성경 오직 성경만이 개신교의 신앙”이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일요일을 강요하는 운동이 세력을 얻게 되면 개신교 전체가 로마 교회의 깃발 아래 서게 될 것이다.

로마 교회는 “개신교도들의 일요일 준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교회(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존경하는 표가 된다.”라고 주장한다. 세속 권력으로 종교적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 바로 짐승의 우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정부가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일이다.

지난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성경의 안식일을 지키는 줄로 생각하면서 일요일을 지켜 왔다. 오늘날도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많은 교회에 일요일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진실한 마음과 성실을 인정하신다. 그러나 법률로써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고 참안식일에 관한 빛이 온 세계에 비취는데도 로마 교회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보다 교황권을 높이는 행위가 된다. 그런 사람들은 가톨릭교회를 높이는 자들이며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가톨릭교회가 자신의 최상권의 표로 정한 것을 높이는 사람들은 그 교회에 충성하는 표 곧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계명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 중 어느 한편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계명을 계속해서 고의로 범하는 자는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

셋째 천사의 경고

셋째 천사의 기별에는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두려운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처럼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무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그 기별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사람이 그 경고에 주의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첫째 천사는 그 기별을 “여러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한다. 셋째 천사의 기별 역시 그와 같은 범위로 전파되어야 한다. 그것은 큰 음성으로 선포됨으로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될 것이다.

그 기별은 사람들을 거대한 두 부류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 그리고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는 자들로 나눌 것이다. 교회와 국가가 연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 선지자는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계 15:2~3)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각 시대의 대쟁투 엘렌 G. 화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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